세계 곤충산업 규모 2020년 38조원 예상

친환경농업 등과 맞물려 블루오션 각광

정부도 1100억 투자, 5개년 육성책 발표

▲ 진딧물의 천적 무당벌레. 농가에서 이용하는 대표적인 천적곤충이다. photo 조선일보 DB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에 있는 ‘두레 수정벌’의 박노용 대표는 작년 1월 수정벌 사업을 시작했다. 수정벌은 꽃가루를 옮겨다니며 과실 등의 수정을 돕는 벌. 박 대표가 수정벌 사업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몇 년 전 요양차 고향인 광주에 머물면서부터다. 당시 박 대표는 일손이 부족한 농가에서 암술에 꽃가루를 일일이 뿌려주는 등 과실을 수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걸 보게 됐다. 벌을 기르는 데 관심이 있었던 박 대표는 이를 보고 수정벌 사업을 생각하게 됐다. 약 1년 동안 수정벌을 번식시키면서 시장에 내놓을 수 있을 정도의 공급량을 확보했다. 올해 광주시에 있는 아홉 곳의 토마토 잡목반과 계약을 맺어 매년 522상자의 수정벌을 공급하기로 했다. 박 대표는 “농촌의 노동력 부족, 친환경농업의 인기, 이상기후로 인한 벌의 개체 수 감소로 앞으로는 수정벌이 더욱 필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동부한농, 천적곤충기업 인수
   
   대표적인 농자재기업 중 하나인 동부한농도 최근 곤충 사업에 나섰다. 동부한농은 지난 4월 19일 세계 3대 천적곤충기업으로 손꼽히는 ‘세실’을 인수했다. 세실은 2001년부터 ‘우리 천적’이라는 상품명으로 해충을 잡는 데 도움이 되는 31종의 천적곤충을 출시해 왔다. 연간 193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던 세실은 정부가 천적곤충 구입비로 농가에 지원해 주던 매년 30억원 정도의 예산이 올해부터 중단되면서 경영난에 시달려오다 동부한농에 인수됐다.
   
   천적곤충사업이란 해충을 제거하는 데 농약이나 살충제 대신 그 해충의 천적을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현재 국내에서 천적곤충사업에 이용하고 있는 곤충은 무당벌레, 진디혹파리, 칠레이리응애 등 총 34종이다. 동부한농의 한 관계자는 “기술 개발이나 신규 진입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천적곤충사업을 세실 인수를 통해 단기에 확보함으로써 친환경농업 분야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 몇 년 새 곤충산업이 블루오션으로 각광받고 있다. 2008년 전남 함평 세계나비곤충엑스포 발표 자료에 따르면 2007년 세계 곤충산업의 시장 규모는 이미 11조원에 이르렀으며 2020년에는 38조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각국은 요즘 곤충산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지정해 육성하고 있다. 일본은 ‘동물애호관리법(애완곤충)’ ‘식품위생법(식용곤충)’ 등의 법률을 통해 곤충산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2001년부터 2005년까지 4년간 곤충산업 육성에 투자한 금액만 20억엔(약 260억원)에 이른다. 미국과 유럽연합 또한 ‘미생물농약제조법’ ‘식물상과 동물상 관리법’을 통해 곤충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2000년 미국 코넬대학의 존 로지 교수는 “미국 경제에 대한 곤충의 공헌도는 연간 570억달러(약 61조원)”라고 발표한 바 있다.
   
   
   과실 수정에도 곤충 활용
   
   국내에서도 2000년 이후부터 곤충산업에 대한 투자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주로 농업과 관련된 화분(花粉) 매개용이나 천적용 곤충을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됐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09년 국내 곤충산업의 시장 규모는 약 1570억원에 달한다. 이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분야는 화분 매개로 전체 시장 규모의 34%를 차지하고 있다. 관련 특허 등록도 활발하다. 특허청에 따르면 2010년까지 곤충자원의 산업화와 관련해 우리나라가 낸 특허 건수는 314건으로 전체 특허 건수 중 28%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특허로는 전라남도가 등록한 ‘하늘소류 곤충을 방제하는 백강류 속 균주 및 이를 이용한 하늘소류 곤충의 살충방법’과 강원대 산학협력단이 등록한 ‘곤충을 이용한 항생제 대체용 비분해성 사료첨가제 및 이의 제조방법’ 등이 있다.
   
   요즘 곤충산업이 이렇게 각광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곤충에 대한 인식의 변화다. 과거에 곤충은 사람들에게 해로운 존재에 불과했다. 그래서 곤충에 대한 연구도 주로 해충을 박멸하기 위한 방재 쪽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최근 들어 곤충의 이로운 측면이 잇따라 발견되면서 곤충을 하나의 생물자원으로 보는 시선이 늘고 있다. 갈수록 확대되는 친환경농업도 곤충산업 성장에 한몫하고 있다.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도 곤충을 통해 농산물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과실의 수정에 곤충을 이용하면 수정 작업에 들어가는 인건비와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뿐더러 인공수정 작업을 하는 것보다 수정에 성공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질 좋은 과실을 수확할 수 있다. 화분 매개 곤충 시장의 경우 연간 540억원 규모에 이른다. 2005년 연간 약 3만상자였던 수정벌의 유통량은 2009년 4만5000상자로 증가했다.
   
   
   전문인력 양성기관 운영
   

천적을 활용해 해충을 없애는 천적곤충사업도 친환경농업의 인기와 맞물려 각광받고 있다. 1998년 3만㎡에 불과했던 천적곤충의 보급 면적이 2008년 2114만㎡를 기록할 정도로 빠른 성장 속도를 보여주고 있다. 국내에서 대표적인 천적곤충은 진딧물의 천적인 진디혹파리와 무당벌레다. 진디혹파리는 1000마리에 약 3만원, 무당벌레는 100마리에 약 4만원 선에 거래된다.
   
   사료용 곤충 또한 최근 국산화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부각되고 있다. 곤충은 단백질이 풍부해 가축 및 애완동물의 영양식으로 애용되고 있다. 대표적 사료곤충으로는 귀뚜라미와 밀웜이 있다. 귀뚜라미의 가격은 마리당 40~50원이며, 밀웜은 마리당 80원 정도다. 경기도 화성시 기산동에 있는 귀뚜라미농원의 경우 작년 귀뚜라미 판매로 연매출 1억4000만원을 달성해 각종 언론 매체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정부에서도 곤충산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작년 1월 11일 농림수산식품부는 2015년까지 곤충산업 육성에 1100억원을 투자해 연간 시장 규모를 3000억원까지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또한 2월 1일 ‘곤충산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곤충산업법)’을 공포해 곤충산업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를 드러냈다. 이 법률에 따르면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5년마다 곤충산업 육성과 지원을 위한 종합계획을 세우고, 농촌진흥청장은 해마다 세부 시행계획을 마련해 실천해야 한다. 이에 따라 농림수산식품부는 지난해 1월 ‘곤충산업 육성 5개년 계획’을 발표해 전문인력 양성, 전문기업 및 농가 육성을 추진하고 있다. 2012년부터 농촌진흥청 5곳, 산림청 4곳 등 총 9곳에 전문인력 양성기관을 지정해 운영할 계획이다.
   
   곤충산업이 앞으로 더욱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과제도 있다. 일단 곤충자원에 대한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 현재 국내에 서식하고 있는 곤충은 약 1만4000여종인데 아직 이 곤충들에 대한 조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유용한 곤충의 종류와 서식환경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곤충들의 유용성을 평가할 기준이 없는 상태다. 곤충에 대한 수출입 제한도 문제다. 현재 상당수의 곤충이 생태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이유로 수출입이 금지돼 있다. 이로 인해 곤충산업에 대한 연구가 더디게 진행되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인프라 구축 등 과제 산적
   
   정부의 지원이 아직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다. 천적곤충 분야에서 세계 3대 기업으로 꼽히던 세실조차도 정부의 천적곤충사업 지원이 중단된 이후 경영난을 겪었다. 정부는 2005년부터 천적곤충을 구입하는 농가에 구입비용의 50%를 보조금으로 지급해 왔다. 그런데 올해 농림수산식품부 예산에는 천적곤충사업 지원이 포함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농림수산식품부는 “애초에 천적곤충사업은 단계적으로 국고 지원을 축소하기로 한 사업이었고, 사업이 정착단계에 들어선 지금은 지원이 필요없어졌다”는 입장이다. 갑자기 천적곤충의 구입 비용이 두 배로 증가하자 농민들은 선뜻 천적곤충을 구입하기 어려워졌고, 세실 또한 매출에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농촌진흥청 곤충산업과 최영철 과장은 “곤충사업을 하는 대부분의 업체가 영세한 게 현실이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지원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